종인은 어렸을 적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했고, 멀뚱히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있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몸 쓰기를 좋아하지만 여럿이 하는 것은 즐겨하지는 않았고 방과 후에 무용소에 찾아가 발레를 배우는 것이 종인이 즐겨하는 운동 전부였다. 아이들은 과묵하다 못해 신비로운 분위기 까지 뿜어내는 종인을 영적 대상으로 여겼고 누구하나 다가가지 못했다. 종인 스스로가 자신을 그렇게 외롭게 만들고 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벽을 밑에서부터 차곡히 쌓아왔고, 그 벽은 마침내 종인을 가두었다. 그리고 그 벽을, 오랫동안 파괴되지 않을 것 같던 벽을 깨부순 순진무구한 소년 도경수는, 종인에게 한 줄기 빛을 선사했다.
*
경수가 처음 종인을 만난 건 따사로운 해가 내리쬐는 어느 봄 날, 학교 쉬는시간이었다.
"안녕? 나 너 알아. 너 우리 반이지?"
"응. 나도 너 알아. 우리 반 반장, 도 경수잖아."
종인은 책에서 눈을 때지않고 말했다. 종인의 발끝에 닿은 공을 주워들은 경수가 눈을 종인을 한 번 바라보고 몸을 돌려 친구들에게 공을 던져주었다. 야! 나 안 할래! 너무 더워!
"왜. 잘 노는 것 같던데."
"너무 오래 뛴 거 같아서 좀 쉬려구."
사실 경수는 교실 정리를 한다고 제일 늦게 점심을 먹고 방금 막 나와 얼마 뛰지도 않은 상태였다. 종인은 그런 사실을 뻔히 알고있으면서도 태연하게 힘든 척 연기를 하고있는 경수를 봐주기로 했다. 경수는 한치의 동요도 없이 오롯이 책에만 집중하는 종인을 힐끗 쳐다보고 입을 헤-벌렸다. 무릎을 꼬고 한 손으로 책 모서리를 잡아 그 위에 올려 책을 읽는 종인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니 평소 멀리서 보던 때와 느낌이 달랐다. 내리 깐 눈 끝에 달린 가지런한 속눈썹에서 느껴지는 우아한 분위기라든가, 가까이서 보니까 더 날카로운 턱선이라든가.. 어쨌든 평소 제가 생각했던 종인의 분위기랑은 사뭇 달랐다. 앗. 그러고보니 아까 얘 뭐랬지? 잘 노는 것 같았다고? 그럼 날 보고 있었다는 거야? 김종인이 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에 경수는 종인의 목을 콕, 찔렀다. 저기 있잖아.. 종인은 찔른 부위를 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들었다. 경수가 나에게 중요한 할 말이 있는가보다. 뭐지. 반 전체공지사항인데 나한테만 미리 말 해주는건가? 종인은 진득한 눈빛으로 경수를 바라봤다. 쨍-뜬 해가 경수의 뒤에 떠서 경수의 까만 머리통을 빛나게 만들고 있었다.
"으음.. 그, 있잖아."
"응. 뭔데? 말 해, 반장."
"그, 어-음. 그러니까 말이지?"
도륵 눈동자를 굴리다가 종인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몸을 움찔떨고 다시 시선을 돌리기 바쁜 경수가 혀를 날름 내밀어 입술을 축이기 바빴다. 김종인의 시선을 거의 하루종일 받고있는 종이 위의 글씨들은 어떤 기분일까-늘 궁금했었는데 아마도 지금 내가 글씨인지도 모르겠다. 짙은 쌍커풀 아래로 긴 속눈썹이 자라있고, 속눈썹 사이사이로 비추는 까맣고도 밝은 눈동자. 그 속에 있는 나. 온 몸이 거기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종인은 그런 경수를 기다려주다가 오래 펼쳐놔서 모양이 잡힌 책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자세를 고쳐잡아 아예 경수 쪽으로 몸을 틀었다. 왜. 뭔데 그래, 반장? 반장-? 깔끔하게 올라갔다 떨어지는 저 말투, 목소리가 경수의 귓가에서 웅-울린다. 경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아, 어. 아니! 아무것도 아,"
"반장 입술은 하트모양이네. 정말 완벽하게 하트모양이야."
신기해. 종인은 손을 들어 경수의 입술을 만졌다. 어떤 모양을 한 입술을 본 것 처음이다. 이 입술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서 종인은 손가락을 뻗었다. 긴 검지 손가락이 입술 가장자리를 따라 한 바퀴 돌면 경수는 볼이 빨개져서 눈만 끔뻑거렸다. 그러면 종인은 엉덩이를 움직여 경수에게 가까이 가고, 당황해하는 경수를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본다. 제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입술이 퍽 뜨겁다.
"기, 김종인. 지금 뭐 하는거-, 야?"
"이렇게 한 번 만져보면 기억에 오래 남거든. 그런데 반장, 반장 입술이 뜨거워."
"어, 어?! 아까 뛰어서! 그리고 나, 날씨도 덥잖아. 그러니까,"
"응. 날씨가 덥지. 햇볕도 뜨겁고. 그치만 반장. 솔직해져."
툭, 아랫입술을 튕긴 종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었다. 반장, 가자. 어딜..? 내 비밀장소. 거긴 그늘도 있고 시원해서 반장 입술 식히기엔 딱 좋은 곳일거야. 경수는 뭐에 홀린듯 얼굴 앞에 내민 종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한 걸음, 한 걸음. 빠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다급함을 숨긴듯한 종인의 발자국을 뒤따라 가며 경수는 잡힌 손을 내려다봤다. 난 몰라.. 손 잡았어.
"여기가 어디야? 우리 학교에 이런 곳도 있었어?"
"다들 잘 몰라. 그래서 조용하고, 방해받을 일도 없어. 저 나무가 해도 가려줘서 그늘도 있고 말이야. 반장, 여기가 시원하니까 여기 서."
나무밑 그늘로 경수를 끌어다 놓은 종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와아-김종인 웃는다. 웃는 것도 처음 봐. 예쁘네. 종인은 아직도 잡고있는 경수의 손을 놓으며 한발짝 다가섰다. 반장, 이제 조금 시원해졌어? 반장, 여기는 나만 아는 곳인데 특별히 반장한테도 알려주는거야.
"왜? 나한테만?"
"반장이니까."
아, 그러냐.. 반장이 뭐라고. 경수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입술을 매만졌다. 정말로 열기가 가라 앉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다. 아까 종인이 입술 만지작 거리던 걸 생각하니까 다시 확 열이 오르네. 으으! 고개를 숙이고 탄식을 내뱉은 경수가 발을 굴렀다. 어쩌짜고 김종인은 그런 짓을 해서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거야... 자기가 나랑 친한것도 아니고 오늘 처음 얘기 한 거면서.
"반장. 나 반장입술 또 만져도 돼?"
"어어? 또?"
또? 하고 묻는 경수의 목소리가 살짝 경박스러웠지만 종인은 신경쓰지않고 손을 뻗었다. 저 손가락을 깨물어 버릴까. 어떡하지. 경수는 원래 생각을 하고 있을 땐 말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라 지금도 종인의 물음에 그저 눈썹을 찌푸리고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침묵은 긍정이랬어. 반장. 전혀 근거없는 얘기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킨 종인이 경수의 입술을 만졌다. 손바닥으로 뺨을 감싸고 엄지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살살 쓸고 아래로 끌었다가 놓아 튕기기도 하고. 아까보다 더 당돌하고 이상하게 경수의 입술을 만졌다. 경수는 결국 아랫입술을 물고 종인의 손목을 잡았다. 그만해 너. 왜-
"왜라니? 이상하잖아! 남자끼리, 그것도 넌 나랑 오늘 처음 말 텄는데!"
"부끄러워서 괜히 그러는 건 아니고, 반장?"
"...누가 부끄러워. 내가? 뭐래."
"맞는데. 반장 지금 나 똑바로 못 보잖아. 내 뒤에 벽 보고 있으면서. 아니야?"
반장? 하면서 종인이 경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야, 오지마라. 경수는 종인의 손목을 잡은 채로 뒷걸음질쳤다. 오지마라. 오지마라고 했어 너. 왜? 왜 가면 안 되는데? 경수가 뒤로 물러나도 종인과의 거리는 가까워지기만 했고 끝끝내 경수는 나무에 등을 부딪혔다.
"으. 하지 마.."
"뭘 하지마?"
"나 보지마. 입술도 만지지 마. 차, 창피해..."
같은 거 달린 남자가 이러는데 창피하다는 것이 수치스러웠지만 경수는 자기감정에 솔직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동그란 눈을 부릅뜨고 저를 올려다보는 경수를 종인은 한가로운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나머지 뺨 한 쪽을 감쌌다. 이로서 종인의 두 손에 얼굴을 붙잡힌 경수는 여전히 종인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교복을 꽉 쥐었다. 난 몰라.
"그럼, 반장 보지도 말고 입술 만지지도 말게. 먹는건 돼?"
"먹, 먹, 뭐라고? "
"반장 입술. 내가 먹어도 되냐고."
경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또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의 침묵은 아까와는 조금 다른것이라 경수는 흡 숨을 들이켰다. 종인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대답, 안 해줄거야?
"...요즘은 그런 거 물어보고 하냐. 드라마에선 그냥 하던데."
"나는 드라마를 안 봐서 잘 몰라. 그러니까 대답, 반장."
"으으... 뭐야 이게. 아, 알았어.. 해."
응. 고마워. 종인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고 경수의 윗입술과 아랫입술 모두를 감쳐물었다. 젖병빨듯 오물오물 쪽쪽 거리던 종인은 조금 더 두툼한 아랫입술만 물어서 이로 잘근 씹었다. 아, 아파! 종인의 팔을 찰싹 때린 경수가 꼭 감고있던 눈을 뜨다가 저를 바라보고있는 예의 진득한 눈빛에 기겁을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종인은 부드럽게 입술을 빨아드리며 벌어진 입술로 혀를 밀어넣었다. 감싸진 뺨을 들어올리며 눈높이를 맞추려던 종인은, 아등바등거리는 경수에 들어올리기를 포기하고 경수의 엉덩이 밑을 받쳤다. 단번에 경수를 받쳐 올린 종인이 경수의 두 허벅지를 자기 골반 옆에 잘 위치하게 하고 경수가 편할 수 있게 나무쪽으로 등을 대게 해 주었다. 경수는 입 안으로 들어온 종인의 혀를 쪽쪽 빨면서 저를 배려한답시고 들어올린 종인의 허리에 다리를 감싸고 목을 끌어안았다.
"하아-하아-"
"하.. 반장."
"후-너 진짜. 숨 쉴틈은 줘야할 거 아냐. 나 숨막혀 죽으라고?"
"미안. 그래도 안 죽었잖아."
그걸 지금 말 이라고.
++
여기까지 생각이 멈췄다. 나중에 뒤에 생각나면 이어서 써야지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