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 찬백





요즘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비싼 담배값도, 치솟는 버스비도 엿같은 과제도 아니다. 그래, 차라리 과제에 치이면서 교수님 욕도 하고 과제주제 때문에 머리 싸매던 옛날이 훨씬 살기 편한 것 같다. 



"백현아."



박찬열을 만나기 전, 그 옛날 말이지.





"뒤질래? 이게 어디서 어른이름을 막 불러?"


"아 왜요. 스물다섯 선생 고3이랑 친구 먹게 해주겠다는데. 회춘하고 좋잖아요. 백현아."


"..왜."


"좋아해."







지랄도 가지가지다 진짜. 한 두마디 말을 더 섞는 것 보다 그냥 무시를 하는 것이 편하다는 걸 나는 과외 3개월만에 깨달았다. 그걸 알지 못했을 때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는데 어째서인지 이자식은 끝까지 싱글벙글 웃는 상이었고 나만 콧바람 씩씩 뿜더라. 젊어서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건지, 박찬열이란 사람 자체가 약오르는 캐릭터인건지. 어쨌든 지금은 가볍게 무시를 해주니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돼고 아주 좋다. 가방 속에서 프린물을 꺼내고 아직도 턱을 괸 채 나를 바라보고있는 고딩의 손에 연필을 단단히 쥐어줬다. 내가 생각해도 많은 양의 문제들이었지만, 과외를 시작하고 첫 시험에서 찬열이의 화학성적이 떨어졌다고 은근하게 말하시던 어머님을 생각하면 이쯤은 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 고3이 죽어라 문제를 풀어야지 뭘 하겠어?






"일단은 하는데 까지 하자. 이 시간에 끝까지 다 푼다 생각하고 풀어."


"이거 솔직히 인간적으로 많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쌤, 진짜. 아아-너무 많아요 많아."


"시끄러 임마. 다 너를 위해서 이러는거니까 잔말말고 풀어. 못 푸는 것도 아니면서. 어? 얼른."


"그럼 한 문제 풀 때 마다 뽀뽀해주세요."


"미친.. 빨리 문제 풀어!"







지금이 바로 박찬열이 날 힘들게 하는 순간이다. 뽀뽀-그러니까, 연인들사이에서 애교있게 통하는 스킨십따위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고등학생이 세상 어디있겠냐고! 얼굴이 별로면 몰라, 잘생기기까지 했다. 키도 컸고-너무 빼짝 마른게 약간 흠이지만-목소리도 좋았고 무엇보다 내가 사람을 만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웃음. 웃음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빨을 다 보여줄듯이 환하게 웃을 때면 철없는 아이같으면서도 귀엽고 순수해서 나도 슬며시 웃음이 나오곤 했다. 금방 표정을 고치긴 하지만. 어쨌든! 혈기왕성하고 호기심 많은 나이대니까 이 철없는 고딩은 분명 짖궅은 장난쯤으로 생각하는 걸텐데 나는 거기에 일일히 반응하고 있으니 힘들어 죽겠다는거다. 쉽게 설레버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힘들다고. 아냐 고딩아.






"한 문제 다 풀었으니까 뽀뽀 해주세요. 백현이 뽀뽀-"


"너 진짜 혼난다. 얼른 마저 풀어."


"뽀뽀 해주면요."


"야. 너 자꾸 장난칠래?"


"장난 아닌데?"


"..됐어. 말을 말자."







그런 얼굴로 장난 아니라고 하니까 진짜 장난 아닌 거 같잖아. 아, 짜증나. 6살이나 어린 놈한테 흔들리는 꼴이 참 안쓰럽다. 변백현 다 죽었네. 누구 손에 놀아나고 그런 사람 아니었는데... 급하게 담배가 말린다. 바짓주머니를 더듬거려 담배갑과 라이터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면 따라서 움직이는 작은 머리통을 향해서 문제나 풀어. 인상을 써주고 방을 나왔다. 찬열이네 어머님이 직장인이신게 참 좋다. 과외 중간에 마음대로 나와 담배도 피울 수 있고. 찬열이네 집은 아파트 2층이었기 때문에 계단으로 1층까지 내려가 동 밖으로 나왔다. 약간은 어두운 하늘을 한 번 바라봐주고 동 앞 벤치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마음놓고 담배도 피지 못하는 세상이라서 사람들이 없을 때 잽싸게 빨고 불을 꺼야했다. 어린아이라도 지나가면 코를 틀어막고 날 노려보는 시선이 엄청나게 따갑기 때문에. 반도 태우지 못한 담배를 던지고 발로 비벼 불을 껐다. 속만 더 답답해진 것 같다.  결국 벤치에 앉아 멍하게 하늘만 바라보고 있게 됐는데, 지나가는 구름에 뜬금없이 박찬열 얼굴이 띠용 떠올랐다. 선생님 뽀뽀-우우- 으악! 사라져!!! 눈을 꼭 감고 허리를 숙였다. 시발. 시바아알..박찬열 제발 사라져....












*










"다 풀었냐."


"아뇨. 하나도 안 풀었는데. 아, 한 문제 풀었다."


"...뭐?"







손에서 담배냄새가 날까봐 옷에 벅벅 문지른 다음에 얼른 앉아 종이를 확인했다. 정말, 깨끗하다. 아까 풀었던 한 문제를 빼고는 새-하얘.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나오질 않아 피식피식 웃었다. 







"너 진짜."


"선생님이 뽀뽀 안 해줬잖아요. 내 탓 아니에요. 선생님 탓이지."


"장난이라도 이쯤에서 그만 둬. 받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박찬열."


"장난 아니라니깐요."






시발. 얘 혹시 내가 싫나? 그래서 도가 지나치는 장난을 치고, 또 이런 식으로 날 엿먹이는걸까? 나보고 알아서 떨어지라고? 손에 들린 두툼한 종이뭉치가 구겨졌다. 방금 나가서 피고 왔는데 또 피고싶어 진다.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을 하고서 장난 아니에요, 그럴 때 마다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다 못해 아파 죽겠다. 흔들리면 안 돼. 넘어가서도 안 돼. 버텨 변백현.








"장난 아니라고요."


"하?"


"내 진심 안 느껴져요? 둔한 것도 아니면서 왜 몰라? 모르는 척 하는거에요?"


"...너 지금 무슨 소릴,"


"나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한테 뽀뽀해달라 그러는 미친놈 아니에요."


"..찬열아."


"예뻐 해달라고 애교 떨지도 않는다고요."


"박찬열."


"밤 늦게 전화해서 보고싶다는 소리도 안 하고요, 아프면 걱정도 안하고요. 내 앞에서 핸드폰 붙잡고 킬킬대면 누구랑 연락하냐고 질투하지도 않고요."







아. 숨이 안 쉬어져. 아직도 심장은 아프게 뛴다. 이러다가 심장마비로 죽으면 어떡하지, 쓸데없는 걱정도 들었다. 이번 장난은 퍼펙트하게 성공했다 찬열아. 어쩜, 거짓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 그래서 순간 내가 너를 와락 끌어안고 나도 그랬어-하고 내 진심을 말해버릴 지도 모르겠다. 종이를 쥐고 있는 손이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했고 피가 통하지 않아서 손끝은 하얘졌다.  오롯이 나만을 담고 있는 까만 눈동자에 온 마음을 빼앗겨 버렸으니 나는 이제 답도 없다. 출구도 입구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나는 혼자 허덕이며 사랑을 하겠지. 사람 마음 하나 가지고 노는 게 너는 참 쉽구나. 대단하다 박찬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주말이던 언제던 보충 해줄테니까 걱정은 말고."


"선생님."


"..그리고 이거는, 안 풀어도 돼. 이제 생각하니까 확실히 무리긴 하네. 내가 다른 거 준비해서 올게. 숙제 없다고 놀지 말고. 문제집으로 미리 예습 해 놔. 검사 할거야."


"변백현."


"..."








팔목이 붙잡혔고 한 쪽 어깨에 맸던 가방이 툭하고 떨어졌다. 지퍼를 닫지 않아서 가방 안의 물건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나는 팔목을 비틀어 빼내고 쭈그려 앉아 물건을 주워 담았다. 찬열이가 반 잘라 준 지우개. 찬열이가 준 연필. 찬열이가 준 목캔디. ...씨발. 계산기까지 다 집어넣고 지퍼를 꼭꼭 닫았다. 그리고 가방을 매고 일어나서 방을 나가려고 했는데 또다시 박찬열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이번엔 팔목이 아닌 몸 전체가 붙잡혔다. 






"때리든 욕을 하든! 다시는 나 안 보겠다고 해도 좋으니까 이러고 잠깐만 있어요. 부탁이에요."


"장난 치지 말라고..하지 마. 놔. 놓으라고. 놔 줘. 찬열아."






밀어보고 몸부림을 쳐봐도 꿈쩍을 않는다. 뼈가 으스러지도록 더 힘을 주는 박찬열 때문에 나는 반 포기상태로 얌전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키차이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지만 박찬열 가슴팍에 얼굴을 박는 자세로 있는데 지금 내 귀에서 쿵쿵, 심장소리가 크게 들린다. 내건가 싶어서 심장 위로 손을 올려보면 소리랑 엇박으로 뛰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빠르게 뛰는 건 차이가 없었다. 그럴리가 없는데... 뻣뻣하게 힘을 주고 있던 목을 편하게 하고 찬열이의 어깨에 이마를 댔다. 엄마. 나 얘 싫어. 미친놈이 장난치고 너무 진지하잖아. 그래서 내가 바보같이 기대를 하게 만들잖아. 그래서 나도 조금은 진심을 내보여도 괜찮을 거라고 안심하게 만들잖아. 나 진짜, 얘 싫어.







"좋아해요. 많이 좋아해. 선생님한테 이러는 거 미안한데 도저히 말 안하고는 못 버티겠어서.."


"..미안. 미안해 찬열아. 미안해."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해요. 선생님 생각해서 참아야지 참아야지 했는데 이렇게 병신같이 굴어서 진짜 미안해요. 내 얼굴보고 공부 가르치는 거 불편하면 과외 그만해도 돼요. 나랑 연락 끊어도 돼. 나는, 선생님한테 좋아한다고 말한 것 만으로도 만족이니까."


"미안. 나는.. 네 말대로 그렇게 할 생각이 없어."


"선생님..."






역시 덩치만 크지 속은 여린아이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더라니, 쉽게 밀리는 몸을 밀어내고 얼굴을 확인하니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손을 뻗어 눈꼬리에 매달린 눈물을 닦아주고 엉망이 된 머리도 정돈해주었다. 남자의 눈물은 진심이라던 말. 이제부터는 믿을란다. 살짝 까치발을 들어 찬열이의 목에 팔을 두르고 당겨 안았다. 대롱대롱 매달리는 폼이었지만 확실한 건 내가 찬열이를 안아주고 있다는 거다. 끅끅 숨을 고르는 19살짜리 덜 익은 아이를 말이다. 그러면 이 아이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곧이 곧대로 내비추며 일단은 나를 끌어 안는다. 그리고 속삭이지. 뭐해요 백현아...?







"쓰읍. 버릇없어 너."


"지금 이게, 뭔..., 네?"


"너랑 연락 끊지도 않을거고 과외를 그만 두지도 않을거라서 미안. 그리고, 장난이라고 생각해서 더 미안."


"..."








부끄러워서 얼굴은 안 보려고 했는데 또 힘에 밀려서 강제로 얼굴을 마주했다. 내 어깨를 부여잡고 떨리는 눈동자로 날 응시하는 찬열이에 온 몸이 타오르는 것 같아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찬열이에 의해 다시 고개가 들리고 어쩔 수 없어진 나는 눈을 꼭 감아버렸다.








"눈 떠요."


"쪽팔려서 안 돼..."


"그래 그럼. 눈 감고 있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녀석의 향이 훅 다가왔고 입술도 다가왔다. 생각했던 것 보다 박찬열의 입술은 차가웠다. 차가운 입술이 촉하고 닿았고 내 입술을 진득하게 물어 삼켰다. 혀의 왕래만 없었다 뿐이지 입술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온갖 짓은 다 한 것 같다. 학학. 입술을 떨어트리고 밭은 숨을 서로 내쉬었다. 나는 살짝 붉어진 볼로 찬열의 볼을 감싸고 떨리지만 용기있게 시선을 맞추고 말했다. 좋아해. 많이. 장난 아니구. 찬열이는 환하게 웃었다. 얘 웃는 모습을 이토록 가까이서 본 적은, 아마 없었지? 있었으면 난 지금 살아있지 않았을거야. 심장 떨려서 진작에 죽었겠지.







"박찬열 너, 어린나이에 벌써 코 꿰인거야. 큰일났다 이제."


"나는 좋아요."


"대학가고 나이먹으면 예쁜 여자들 깔렸어. 내가 그 때 왜 그랬지-하고 후회할지도 몰라 너."


"후회 안 해요. 선생님보다 예쁜 사람 없어."


"그리고 나는 이제 늙어서 가벼운 연애같은 거 안해. 한 번 만나는 것도 되게 신중하다고."


"네 네. 알겠습니다. 내가 선생님 책임 질거에요. 결혼도 나랑 하고, 가정도 나랑 꾸리고 늙는 것도 나랑 같이 늙어요."










사랑하니까 그러는거야 찬백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눈살을 찌푸렸다. 여름 끝-가을 시작! 이라면서 낮에는 왜 이렇게 더운 거야.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새벽에 추웠으니 긴 팔을 입어야겠다고 한걸까. 지금 같이 밖에 오래 서 있지만 않았으면, 정신을 놓고 사니까 가끔은 이렇게 이득을 보는구나 하겠지만…. 존나 덥잖아! 이게 다 망할 출판사! 망할 마감 때문! …아니지? 아니야. 이건 전부 다-






"백현아!"






전부 다-! 박찬열 탓이다. 머릿결은 어찌나 좋으신지 가벼운 뜀박질에도 머리카락이 팔랑 찰랑거린다. 짜증 나. 걷어 올렸던 소매를 내려 단추까지 채우고 그대로 등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 내게로 뛰어온 박찬열에게서 멀어지는 셈이었다. 나는 박찬열과 오후 1시에 약속을 잡았고, 박찬열은 정확하게 1시간이나 늦은 오후 2시에 나왔고, 그래서 나, 변백현은 기분이 아주 좋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지하철역을 목적지로 삼고 척척 걸어가는데 박찬열에게 어깨가 붙잡혔다. 그 힘에 이끌리지 않으려고 온 몸의 근육들을 활성화하며 제자리에서 못을 박았다. 백현아. 얘기 좀 해. 하면서 박찬열이 이번엔 내 나머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가는 게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이대로라면 속절없이 박찬열을 마주 보고 말 거야! 하는 경고사이렌이 내 머릿속에서 울렸다. 그래서 나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세상에서 가장 짜증이 잘 느껴지는 목소리로 기선제압을 했다.







"놔."


"싫어. 놔주면 너 그냥 집으로 갈 거잖아."


"어, 맞아. 나 집에 갈 거야. 그러니까 놓으라고. 너랑 할 얘기 없으니까!"








이럴 거 뻔히 알면서! 왜 늦었는데? 핸드폰은 폼이냐? 미리 연락이나 해줬으면 좋잖아! 10분, 20분도 아니고 무려 1시간씩이나 늦을 건 뭐야? 일이 바쁘면 아예 약속 시각을 늦게 잡든가 했어야지. 나는 뭐 한가한 줄 알아? 세상에서 너 혼자만 바쁘고 그러냐? 어?! 나도 존나 바쁘고 그렇거든! 내 마음의 입이 그렇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진짜 입으로도 이렇게 말하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났다. 하지만 나는 그저 박찬열의 손을 툭 쳐내는 일밖에 하지 못했다. 정말로 그랬다간 상상하기도 싫은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질 테니까. 다시 자유의 몸이 된 나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걸었다. 그리고 지하도로 내려갔다. 그래도 나는 혹시나, 내가 지하도로 몸을 숨기기 전에 박찬열이 달려와서 내가 잘못했어 백현아-따위 말로 날 잡지 않을까 했는데…. 시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랬다. 













****














"박찬열 존나 싫어. 요다 새끼. 죽어라!"








...아니 진짜 죽지는 말고. 조금 다쳐 그냥. 박찬열을 닮지 않아서 귀여운 강아지 인형의 얼굴에 주먹을 푹푹 꽂다가 얘는 무슨 죄인가 싶었다. 어…. 아니야. 박찬열에게 간택 받은 죄가 있어 너는. 화를 참아보려고 했지만, 인형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얼굴에 도저히 불가능이다. 다시 몇 번 더 주먹질을 해주고 인형을 끌어안고 침대에 벌렁 누웠다. 내가 그렇게 가버렸는데 어떻게 연락도 없냐..오늘 제대로 재수 없네 박찬열. 먼저 연락 올 때까지 저얼대-내가 먼저 연락 안 할 거야. 찾지도 않을 거라고! 허공에 대고 발길질을 마구 하면서 박찬열 때리는 상상을 하는데 띵, 핸드폰이 울렸다.








-술ㄱ?


-ㄲㅈ








이 새끼는 술 마실 친구가 나밖에 없는 걸까? 맨날 나보고 술 마시재. 대화방을 나와서 아무 알람도 뜨지 않는 목록을 훑어보다가 두 번째로 밀려난 대화방을 눌렀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하트뿅뿅 날려가면서 알콩달콩하던 사이였는데..후. 오늘따라 웃고 있는 박찬열의 프사도 마음에 안 든다. 손가락으로 얼굴을 톡톡 건드리다가 카톡 알람을 꺼버리고 핸드폰까지 무음으로 돌렸다. 박찬열 진짜 짜증 나. 인형을 끌어안고 끝없이 박찬열 욕을 하면서 살짝 눈을 감았다. 30분만 자야지. 나도 나름 바쁘게 사는 인생이라 마음 놓고 잘 수는 없어서 진짜 눈만 잠깐 붙였다 일어나야지…….







"이제 그만 일어나면 안 될까 백현아?"







하지만, 곧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웬 환청이 들리. 는 게 아니고 진짜 목소리구나.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들었고 내가 눈을 감고 뜨는 그 사이의 시간은 5분도 채 안 흐르는 거 같은데 얘가 어떻게 내 옆에 누워있는 것인지…? 어리둥절한 상황에 눈만 깜빡거리고 있으니 웃긴건지 뭔지 박찬열은 피식 웃으면서 내 귓불을 만졌다.








"잘 잤어? 너 내일까지 마감이라면서 이렇게 자도 되는 거야? 보니까 채색도 다 안 한 거 같던데."


"...내가 얼마나 잤다고. 너 때문에 눈만 감았다 떴잖아. 지금."


"무슨 소리야. 카톡 답도 없고 전화도 안 받고 그러길래 걱정돼서 와보니까 컹컹거리면서 자고 있었는데."


"아씨. 무슨 컹컹이야 컹컹은!"








나 엄청 조용하게 자거든! 부러 더 악을 쓰면서 인형으로 박찬열을 때리는데 뒤로 보이는 벽시계가 눈에 띄었다. 어. 어…? 나 진짜, 잠들었었어? 그것도 이렇게나 오래? 이제서야 조금은 상황파악이 됐다. 그러니까, 잠깐 눈만 붙이자 하고 눈을 감았는데 나는 마하의 속도로 잠이 든 거고, 박찬열은 내가 자는 사이에 우리 집에 온 거다. 그리고 뭐 혼자 이것저것 하다가 내가 너무 안 일어나니까 깨우려고 말을 걸었겠지. 그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면서 마치 1분의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꼈다-뭐. 이거 맞지? 아으.. 눈두덩이를 꾹꾹 눌러주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마감도 안 끝났는데 침대에 누운 내 잘못이다. 아니면 알람이라도 맞춰 놓을 걸 그랬지. 후. 오늘도 밤샘예약이다. 지긋지긋한 밤샘.. 으아! 앓는 소리를 내며 발로 침대를 팡팡 내려쳤다. 그러니, 내 허리에서 가만히 있던 손이 올라와 뒤통수를 다 감싸 부빗부빗거렸다. 









"3시간씩이라도 잠은 꼬박꼬박 자랬지? 이렇게 몰아서 자면 건강에 안 좋다고. 하여간 변백현 내 말 안 듣는 건 세계 1등이다."


"...어쩌라고. 내가 알아서 하니까 신경 쓰지 마. 그리고 이제 너 가. 머리도 그만 쓰다듬어 짜증 나."


"아직도 화났어? 미안해 백현아.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랬어."


"급한 일? 무슨 급한 일? 나를 그 뙤약볕에서 1시간씩이나 기다리게 만들 만큼 급한 일이었어?"










몸을 벌떡 일으켜 앉아 박찬열을 노려봤다. 맞다. 나 지금 얘한테 화난 상태잖아. 이를 악물고 씩씩 옅은 콧바람을 내뿜었다. 박찬열은 느리게 몸을 일으켰고 내 품에 있는 인형을 빼서 던져버리고 날 끌어안았다. 하지 말라고 몸부림을 쳐봐도 박찬열한테는 소용없는 짓이었다. 깡 마른 게 힘은 세서 이렇게 무력적으로 나올 때면 백이면 백 나의 패배다.










"약속 시각 안 지키려고 한 거 아니었고 미리 나가서 내가 너 기다리고 있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수만 기획사 기획실장이 와서. 왜, 저번에 노래도 못하는 것들 데려와서 막무가내로 곡 하나 써달라고 했다던 민폐남 있잖아. 알지?"


"...어."

"그 남자가 와서 또 곡을 써달라고 별 지랄 난리를 다 피우는 거야. 곡을 안 써주겠다고 하면 여기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이겠다느니, 사장님을 부르겠다느니. 문 앞을 가로막고 서서 못 나가게 하는데 어떡해 내가."


"왜? 너 힘 세잖아. 무식하게 밀치고 나오지 그랬냐."


"아니야. 그 남자 우락부락해. 나도 그런 사람 상대하는 건 좀 힘들어."


"그러면 그런 일이 생겨서 늦어지겠다, 이런 연락은 할 수 있었잖아. 연락은 왜 안 했는데? 내가 얼마나 걱정했던 줄 알아?"


".....아, 미안. 그건 생각 못했.., 아. 백현아 미안해!"










찰랑거려서 재수 없었던 머리카락을 드디어 잡았다. 한 움큼 쥐어 잡고 힘껏 잡아당겼지만 빠지진 않아서 살짝 아쉽다. 아프다고 내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박찬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을 놓았지만 언젠가 저 머리카락을 다 뜯어버리리라-다짐했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어떻게 됐는데? 어정쩡한 자세 때문에 허리가 저려져서 엉덩이를 움직여 편하게 박찬열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는 목을 끌어안고 어깨에 턱을 대주니 편해도 이렇게 편할 수가 없는 거다. 내 등을 감싸는 박찬열의 손길도 참 따뜻하고.









"그래서 뭐…. 하나 써주기로 했어."


"물러 터졌어. 박찬열. 안 된다고 했으면 끝까지 안 된다고 해야지!"


"똥고집을 부리는데 어떡해 그럼! 그리고 돈도 많이 준대."


"..얼마?"


"팔백."










소곤소곤 속삭이는 팔백 소리에 나는 순간 팔천이라도 되는 줄 알고 기겁을 했다. 그러다가 다시 박찬열의 말을 곱씹어보고 아, 팔백. 많이도 주네. 박찬열은 반응이 뭐 그러냐며 투덜거렸지만, 팔천을 상상하던 머릿속에서 팔백이 끼어들었으니 약간의 실망도 없지 않아 있는 거다. 그렇다고 팔백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팔백이면 한 달 월급으로 쳐도 높은 금액이었으니까. 게다가 지금 날 어루만져주고 계시는 이분께서는 건반 띵띵 기타 띵까띵까 기계 띡띡 만져주시고, 창작의 고통 몇 번 겪으시면 짠! 팔백이 들어오니 대단하긴 한가보다. 새삼 애인의 천재성과 위대함에 어깨가 솟아오르면서 가슴이 벅찼다. 몇 년을 박찬열이 이렇게 벌어먹는다면 나는 마감에 허덕이는 짓 따위 안 해도 되는 거잖아? 집에서 먹고 놀면서, 우아하게 티타임도 즐길 수 있고 낮잠도 마음 놓고 자도 되고…. 백현아. 너는 내가 먹여 살릴게. 다 때려치워! 이러려나. 큭큭. 상상만으로도 좋다. 









"너 그럼 당분간은 바쁘겠네. 작업실에만 박혀있을 거 아니야."


"으응. 그렇지…. 그러니까 나 보고 싶다고 전화로 찡찡대지 말고 와 작업실로. 너는 문전박대 안 할 거니까."


"싫어. 방해되는 거 같고 그래... 그냥 전화로 찡찡댈래."


"아니니까 오라고. 내가 너 못 보면 힘드니까. 머리도 안 돌아가고 곡도 잘 안 써져. 내 뮤즈는 넌데 네가 없으면 안 되지."










말은 잘한다. 이래놓고 내가 찾아가면 달려들 거잖아. 나 소파에 엎어트릴 거잖아? 네 속셈 모를 줄 알고? 몸을 살짝 떼고 박찬열의 얼굴을 쳐다봤다. 얘는 머리고 눈동자고 왜 까만 걸까. 잘생기게 말이야. 코를 앙 깨물고 박찬열이 무어라 하기 전에 목을 끌어안았다.










"그런데 노래 못한다는 게네들, 예뻐?"


"조금? 아이돌이니까 당연히 예쁘지. 어린 애들이 그래도 성격은 밝더라. 오빠오빠 하면서 곧잘 친근하게 굴고."


"...."








오호라. 그랬다 그거지? 나한테 그런 말은 하지도 않았으면서? 박찬열?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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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파는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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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 Baby! 번외; 큰아빠와 작은아빠 下 찬백







이러다 탈진하면 어떡해, 할 정도로 우주는 눈물을 흘렸다. 꺽꺽거리며 대성통곡을 하는 게 아니라, 입술을 깨물고 어깨만 들썩거리며 주르륵 흘리는, 그래서 더 애처로운 어린 아이의 눈물이었다. 몇 분이 되었든 백현은 우주가 울음이 그치길 바라며 안고서 거실을 뱅뱅 돌았다. 엄마 없는 게 많이 서러웠구나. 내가 너무 나만 생각했어... 나 좋자고 애를.. 부모로써의 자격이 없어 나는! 어쩐지 백현도 눈물이 찔끔 나오는 것 같아서 코를 훌쩍거리니 안절부절하던 찬열이 득덜같이 곁으로 달려와 백현의 얼굴을 살폈다. 울어?








"백현아 너까지 울면 안 돼. 나 진짜 미친다..응?"


"안 울어..킁,"







이미 눈가가 새빨게져서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으면서 울지 않는다고 우기는 백현을 보고 있는 찬열은 마음이 안 좋았다. 내새끼 우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아픈데 내사람까지 울기 시작하면 나는 어떡해. 나도 울고 싶다... 백현의 눈꼬리에 고인 눈물을 닦아주며 백현이 우주에게 그러듯, 찬열이 백현의 등을 토닥였다. 안 운다니까 왜 호들갑이야..더 눈물나게. 고개를 숙이고 우주의 머리통에 뺨을 댄 백현이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을 주륵 흘렸다. 그 때, 우주가 품에서 바르작대며 백현의 목을 더 끌어안았다. 엄마, 울어요..? 아니야. 안 울어요...








"우주가아.. 아빠라고 안 불러줘서 우는거야...?"


"아니야 우주야..눈에 뭐가 들어가서 그래."


"진짜..?"


"응 진짜."







둘 다 애야 애. 찬열은 백현의 품에서 우주를 뺏어 번쩍 들어올렸다. 두 뺨에는 눈물자국이 가득이었고 눈에는 아직 흘리지 못한 눈물이 있었다. 내일이 되면 붕어눈이라고 실컷 놀려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찬열은 소파에 앉아 허벅지를 바닥삼아 우주를 세웠다. 그 사이 백현은 주책맞게 흐르는 눈물을 진정시키느라 한 동안 등을 돌리고 있었고, 화장실로 달려가더니 맑게 웃으며 찬열의 옆에 앉았다. 코끝은 빨갛고 눈은 벌써 부었으면서 아닌 척. 찬열은 그런 백현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춰주고 다시 우주를 쳐다봤다.






"우주야. 아빠랑 엄마는 우주 많이 사랑해. 그지?"


"..웅."


"엄마한테 아빠라고 부른다고 해서 엄마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우주 안 좋아하는 것도 아니야. 아마 우주를 더 많이 좋아할걸?"


"...그치만 우주는 엄마라고 부르는 게 더 좋단말야.."






그건 솔직히 나도 그래..백현이가 엄마면 겁나 예쁘잖아..찬열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입맛을 다시다가 백현의 의미모를 째림에 정신을 차리고 잡고있는 우주의 팔뚝을 조물거렸다. 우주는 아빠가 두 명 있으면 좋은 거 모르지? 나쁜 사람들이 우주 괴롭히면 아빠 혼자 나타나는 거 보다 아빠가 둘이나 나타나면 나쁜 사람들은 무서워서 금방 도망가! 그리고 못된 친구들도 우주 못 괴롭히고! 멋쟁이 아빠가 둘인게 얼마나 좋은건데-








"...흡. 진짜..?"


"그러엄!"









찬열의 말을 가만히 듣고있던 백현은 저런 유치찬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아무리 우주가 어리다고 해도 그렇지! 했는데 잿빛 표정이 걷혀지면서 눈을 빛내는 우주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피만 안 섞였지 완전 박찬열이잖아... 단순한 거.








"좋지? 우주는 아빠가 두 명이나 있고 이야-멋있는데?"


"헤헤..그러면 이것두 아빠! 요것두 아빠!"







찬열과 백현을 콕콕 찌르며 금새 아빠아빠-거리는 우주였다. 잘 풀린건가. 상황이 어떻게 해서 정리된건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은 꽤 좋은 편이니 백현은 만족스러웠고, 찬열은 그냥 행복했다. 내 새끼 웃는 거 어쩜 꽃이네 꽃! 둥가둥가 우주를 들었다 놨다 해주며 통통한 볼에 쪽쪽 뽀뽀를 해주고 마찬가지로 통통한 백현의 볼에도 쪽쪽 뽀뽀를 해주었다. 백현도 기분좋게 찬열의 스킨십을 받아주고 있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손을 들었다. 잠깐, 우주가 아빠-하고 부르면 누구 부르는지는 어떻게 구분해?








"그..음. 앞에 이름을 부를까? 찬열아빠-!백현아빠-! 이렇게?"


"그건 좀..."


"어..그러면, 아!"


"나는 큰아빠, 너는 작은아빠!"


"...왜?"


"나는 크니까."


"...맞는 말이긴 한데.."




기분 나빠..! 이씨! 나도 큰 키거든! 내어린 애한테 벌써부터 선입견을 심어줄 생각이야?! 백현이 으르렁 대며 찬열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아니, 뭐가 선입견이야 사실인데! 백현아! 영혼까지 탈탈 털리던 찬열은, 우주의 '나는 큰아빠보다 짜근아빠가 좋아!' 발언에 간산히 멱살이 풀려났고 백현이 누그러진 기분으로 우주를 안아줌으로서 상황은 끝났다.









******
번외 끝~

Baby Babty! 번외; 큰아빠와 작은아빠 上 찬백










"찬열아 있잖아,"


"응?"


"우주는, 너를 뭐라고 불러?"


"아빠라고 부르지. 왜?"


"...왜 너는 아빠야."








뭐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찬열은 책을 덮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백현 역시 읽고 있던 책을 덮어 내려놓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무엇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건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찬열은 혹시 내가 잘못한게 있나-오늘 하루를 돌이켜보며 때 아닌 고찰을 해보았지만 딱히 백현의 심기를 건드린 짓을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출근을 할 때는 우주보다 백현에게 먼저 뽀뽀를 해주었고, 점심시간에 연락도 잘 했다. 퇴근 전에는 빨리 보고싶다고 애교까지 부렸더랬다. 몸을 뒤척여 찬열 쪽으로 돌아누운 백현은 생각에 잠긴 찬열의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렸다. 나도 아빠 하고싶다구.. 






"뭐?"


"우주가 자꾸 나보고 엄마라잖아. 아빠라고 부르랬는데도 아빠는 내가 아니라 너라면서 고집 부려."






백현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찬열이 낮게 웃었다. 야, 비웃냐? 듣기도 잘 들은 백현이 찬열의 허벅지를 콱 꼬집었다. 누구는 하루종일 그것 때문에 애랑 실랑이를 벌여서 힘들고 걱정인데 웃어? 찬열이 아프다고 찡찡거렸지만 백현은 들은 체 만 체 허벅지살을 좀 더 세게 꼬집어 주고 손을 뗐다.





"진짜 변백현. 내 살 뜯으려고 작정했지?"


"어 작정했다 왜. 나 잘래."


"에이. 그래서 우주는 계속 너한테 엄마라고 하겠대?"






똑바로 누워 눈을 감은 백현의 앞머리를 쓰다듬고 귓볼을 만지며, 찬열이 끈질기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해주지 않으면 백현은 단단히 삐져서 며칠은 말도 섞지 않으려고 할거다. 응? 백현아-어떻게 됐는데? 말 해주라. 우주가 계속 고집부리면 내가 내일 우주랑 얘기 해볼게. 백현이 너가 아무리 예쁘고 엄마같아도 나랑 같은 아빠라고-. 어처구니 없는 말에 백현은 눈을 뜨고 코 앞에 있는 찬열의 얼굴을 밀어냈다. 그게 애한테 할 말이야?







"내가 왜 엄마냐고-나도 남잔데!"


"암, 세상이 반쪽이 나도 변백현 남잔건 안 변하지."


"...."






박찬열 얄미워.














**














따뜻한 토요일, 한낮. 백현은 베란다 창으로 들어온 햇볕 안에 우주와 앉아서 블럭놀이를 하고 있고 찬열은 부엌에서 열심히 설거지 중이다. 달그락달그락 그릇 부딪히는 소리를 노래 삼아 우주는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알 수 없는 음을 흥얼거렸고 백현은 가만히 그런 우주의 모습을 바라보다 풋, 웃음을 터트렸다. 내새끼 귀여운 거 봐.





"우주야-아빠가 복숭아 까줄까?"


"응! 엄마것두!"


"아..우주야. 엄마 아니랬죠?"







엄마아..백현의 날카로움에 우주가 어깨를 움츠리고 웅얼거렸다. 찬열은 부엌에서 힐끔 상황을 훔쳐봤다. 내가 나서야 할 땐가! 잽싸게 복숭아를 까 그릇에 잘라 담고 후다닥 사랑둥이들 곁으로 달려갔다.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고-우주는 속상한 마음에 입술을 쭉 내밀었다. 왜 엄마라고 하지 마라는거야..엄만데..





"이거 하나씩 드시고. 우주는 고개들고 아빠좀 볼까?"


"아빠.."


"우주야. 우주는 왜 아빠한테 아빠라고 불러?"


"음.음. 아빠는요, 남자구, 키도 크구, 우주랑 엄마한테 아침마다 쪽쪽이 하면서 회사 가니까아-"


"그러면, 엄마는 왜 엄마라고 불러?"





야, 너까지! 백현은 찬열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간지러움에 몸을 꿈틀거린 찬열은 백현의 어깨를 끌어 안고 입 안에 복숭아를 넣어줬다. 백현이는 조용히 해. 우주는 말을 하기 위해 벌리던 입을 합 다물었다. 그러고는 백현을 한동안 뚫어져라 쳐다봤다. 백현은 찬열을 괴롭히기에 여념이 없었으나 저에게 향한 어린 아이의 올곧은 시선에 몸짓을 멈추고 눈을 맞춰주었다. 이러고 있으니 저 까만 눈동자에 홀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우주가 엄마라고 부르게 해주세요-한 마디만 하면 응. 그래 내새끼. 불러! 할 것만 같다. 아, 안돼!







"...."


"그러니까아..엄마는..."


"응, 엄마는?"


"엄마는.. 우주 맘마도 주구 우주 울면 안아주구 우주 잘 때도 옆에서 토닥이 해주구 또, 우주 치카치카도 해주구.. 그러니까 엄마야. 아빠는 그런거 안 하잖아! 그러니까 아빠 아니구 엄마야!"







백현과 찬열은 서로를 마주봤다. 박찬열 너새끼가 우주한테 얼마나 못 해줬으면. 아니, 백현아. 너가 잘 해준거지. 서로의 눈동자가 그렇게 말했다.








"후. 그래도 우주야, 엄마도 남자고 일 하잖아."


"네.."


"또 내가 우주 너를 잘 챙겨주는 건, 단지 집에 있으니까 그런거야. 만약에 내가 회사 가고 아빠가 집에 있었으면 아빠도 우주 많이 챙겨줬을걸? 그렇지 찬열아?"


"어, 어-그럼!"





당연하지! 하하! 내가 우리 우주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우주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린 아이가 이해하기엔 아직 힘든가.. 백현은 그동안 강하게 몰아붙였으면서도 기 죽은 모습을 보고있자니 마음이 약해져 버려서 찬열을 슬쩍 밀어내고 우주를 품에 안았다. 우주야. 당장 부르기가 힘들면 우주가 조금 더 크는 그 때 아빠라고 불러줄래? 응? 작은 등을 쓸어내리면서 조근조근 달래보았다. 하지만 우주는 백현의 목을 꼭 끌어안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몸짓이라도 보여주면 좋으련만, 발가락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면 우주는..엄마가 없어..?"


"..어?"


"엄마가 없구, 아빠만 두 명이면..우주는 엄마가...., 엄마가.. 엄마..."







말을 머뭇거리던 우주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알다가도모를경수 카디






"종인이는 언제 나오는 거지?"






운동장 스탠드에 오래 앉아있는 것도 참 힘든 일이다. 내가 얼마나 여기 있었지. 딱딱한 시멘트에 맨 엉덩이로 족히 1시간은 넘게 앉아있었으니 뼈도 아프고 살이 차갑기도 하다. 종인이 오면 잽싸게 일어나려고 매고 있던 가방도 지금은 꼭 끌어안고 있다. 지루해…. 지금이 몇 시 몇 분인지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보면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경수는 허리를 약간 숙여 가방을 사이에 두고 상체와 허벅지를 붙였다. 약간 어둡다. 이젠 완전한 가을이라서 해 지는 시간은 꽤 빨라졌다. 6시 즈음 됐으려나? 종인이 공부 열심히 하네…. 야자도 하고 간다고 그러면 어떡하지.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경수가 살짝 당황했다. 학교가 끝나고, 종인은 꼭 도서관에서 한두 시간 정도 자습을 했다. 경수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애석하게도 빠듯한 과외 시간 때문에 매번 아쉬울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주말로 미루자는 과외 선생님의 문자를 받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드디어 종인이랑! 경수는 오로지 그 생각 뿐에 바보같이 기다리기로 했다.







"바보 같은 짓 했다고 놀리겠네…. 놀림 받는 거 싫은데..."


"싫으면 처음부터 그런 짓을 안 하면 돼."


"어!"







어!-는 뭐야 또. 입꼬리만 올려 웃은 종인이 경수의 머리를 꾹 누르며 옆에 앉았다. 경수는 다리를 흔들며 고개를 틀어 종인을 바라봤다. 안경 썼네? 종인은 아차, 싶어 얼른 손을 들었다. 하지만 제지하는경수의 손이 조금 더 빨랐다. 보기 좋은데 왜 벗어. 벗지 마-. 뭐가 보기 좋아 못생겼는데. 방싯방싯 웃는 얼굴에 종인은 한숨을 내쉬며 안경을 잡는 대신 경수의 손을 잡았다.







"이 시간에 왜 여기 있어? 과외는 어쩌고?"


"응. 과외 선생님이 주말로 미루자고 그래서."


"왜?"


"말 안 해줬어. 공부 많이 했어?"


"어어. 너 얼마나 있었던 거야? 기다릴 거면 나한테 말을 해주던가. 아니면 도서관에 오지, 왜 여기에 있었어?"


"어..?"







굳이 여기에 앉아서 종인을 기다린 이유는 없었다. 정말,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를 했으면 얼굴도 계속 보고 좋았을 텐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경수는 괜히 억울한 기분에 얼굴을 찌푸렸다. 종인은 그런 경수가 귀여워서 엄마 미소를 지었다. 똑똑한 척은 맨날 저 혼자 다 하더니 가끔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이마저도 경수의 매력 중 하나라고 치부해버리는 종인이었지만 어떨 때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하는 터라 종인은 진지하게 경수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경수야. 너 왜 그래? 왜, 막. 이상한 짓을 하고..'

'이상한 짓? 나 이상해?'

'그게 아니라-가끔 날 당황스럽게 만든다거나 평소 너답지 않은 행동을 하니까.'





아니야. 나는 어제도 오늘도 같은 도경순데? 기분도 똑같아. 그런데 너가 내 앞에 있거나 너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대담해지고 안 하던 짓 해보고 싶고 그러긴 하더라. 이상한 게 맞나? 경수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종인은 그 자리에서 경수를 끌어안아 버렸다. 별것도 아닌데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대로였다. 옛 생각에 잠겼다 빠져나온 종인은 아직도 불만을 표하고 있는 제 옆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조물댔다.









"에이씨..."


"나 배고파."


"..."


"너네 집 가자."


"..왜."


"배고프니까?"








배고픈데 왜 우리 집을 가야 해?  한쪽 볼을 완전히 내준 채 경수가 뾰로통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금방 종인의 손에 깍지를 꼈다. 뾰로통하게 대답한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뭐 먹고싶은데…. 음. 네가 해주는 거면 다 좋아. 그러면 밥에 김치만 준다? 어. 좋아. 밥을 네가 하니까. 오므라이스 해줄까? 응. 스파게티는? 그것도 좋아.








"하나만 좋다고 해. 나 사실 오므라이스랑 스파게티 둘 다 먹고 싶은데 못 골라서 너한테 물어보는 거란 말이야."


"그러면 나는 도경수 입술 먹을게."


"아. 뭐래."









진짠데? 종인이 얼굴을 가까이하고 눈웃음을 쳤다. 경수는 흡! 숨을 들이 마시고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폈다. 애들도 아직 있을 것이고, 선생님들도…. 귀엽다. 어쩜 이렇게 귀엽지? 종인은 낮게 킥킥 웃더니 경수의 뺨을 잡아 고정했다. 경수의 눈동자에 오롯이 자기만 담길 수 있도록. 경수의 깨끗하고 티 없이 까만 눈동자 속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고 있다는 걸 확인할 때면 심장이 아프게 뛴다. 경수도 같은 마음이기를 바라며, 종인이 엄지로 경수의 아랫입술을 쓸었다. 다소 거친 숨소리가 몇 번 오가고, 경수의 눈이 감기는 것을 확인한 종인은 고개를 틀어 입을 맞췄다. 처음엔 가볍게 입술만 꾹 누르다가 윗입술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어주고 혀로 간지럽히다가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입안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경수의 입속은 항상 뜨거웠다. 구석구석 혀로 찔러보고, 핥아보고 해도 뜨거웠다. 깍지를 끼고있던 손이 움찔거린다. 종인은 움찔거림을 느끼며 좀 더 입술에 무게를 실었다. 경수의 몸이 살짝 뒤로 기울었고, 넘어지지 않게 종인이 뒷목을 잡아주었다.





'누가 보면 개망하는데! 그런데 좋다….'





멈추기 싫은 엄청난 딜레마에 빠진 경수가 어설프게 혀를 움직이다가 호흡곤란을 느끼고 고개를 틀었다. 파-하는 우스운 소리가 났고 학학거리는 소리도 났다. 종인은 붙잡은 뒷목을 한 번 주무르고 경수의 가방과 자신의 가방을 앞뒤로 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배고파 진짜.







"너, 그래서 오므라이스야, 스파게티야?"


"네가 먹고 싶은 거."


"나 둘 다 먹고 싶,"







말을 멈추더니 수줍게 잡고 있던 손을 풀고 경수가 폴짝 종인의 앞에 섰다. 오늘은 이상한 짓을 많이 하네 경수가. 종인은 말없이 웃으며 경수의 행동을 지켜봤다.









"나도-,"


"김종인 입술 먹고 싶어."









쪽, 달큰한 소리를 내며 입을 맞춘 경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다시 종인의 옆에 섰다. 얼빠진 모습의 종인은 경수가 좋아하는 김종인 중 하나였다. 다시 손을 잡고 경수가 먼저 발을 움직이니, 종인도 마지못해 경수를 따라서 움직였다. 조금을 걷다가 종인이 비식비식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으하하,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경수가 평생 이유를 몰랐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렇게 당돌한, 이상한 짓을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종인은 생각했다. 집에 가서 실컷 먹게 해줄게, 경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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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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